[천자 칼럼] 선거 토론의 기술

입력 2022-02-03 17:17   수정 2022-02-04 00:11

미국에선 치열한 선거전에서 촌철살인으로 판도를 흔든 사례가 많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상대인 스티븐 더글러스가 “두 얼굴의 이중인격자”라고 하자, “다른 얼굴이 있다면 못생긴 얼굴을 들고나왔겠나”라고 했다. 더글러스는 할 말을 잃었고, 링컨은 큰 점수를 땄다.

미국에서 1960년 도입된 TV토론 위력은 대단했다. 그 해 43세 존 F 케네디는 “이번 주 빅뉴스는 정치가 아니라 야구왕 테드 윌리엄스가 나이 때문에 은퇴한다는 소식이다. 경험이 전부가 아니라는 산증거다” 등의 유머와 젊고 박력 있는 이미지로 리처드 닉슨을 꺾은 건 잘 알려져 있다.

로널드 레이건은 1980년 대선 때 “4년 전보다 살림살이가 나아졌나” “경기회복은 지미 카터 씨(당시 대통령)가 일자리를 잃을 때”라는 기발한 말로 판세를 반전시켰다. 4년 뒤 월터 먼데일 후보가 레이건의 고령을 문제 삼자 “먼데일 후보가 젊고 경험 없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진 않겠다”고 받아친 것도 유명하다. 미국 TV토론도 종종 ‘진흙탕싸움’이란 혹평이 나오지만, 일대일 승부로 박진감을 더하는 건 부인할 수 없다.

한국은 어떤가. 대선 TV토론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7년 대선 때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당시 62세)는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73세)에게 “나이가 너무 많다”고 하자 김 후보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 나이도 만만찮다”고 대꾸하면서 토론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물론 어려서부터 토론 훈련을 하고 청중이 웃지 않으면 실패한 연설로 치부하는 미국과 엄숙·근엄한 한국의 정치문화를 단순 비교하긴 무리다. 그러나 모든 후보가 등장해 중구난방 진행되는 우리의 토론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어제 여야 대선 후보 4명이 참여한 TV토론이 열렸다. 후보들은 자유 주제, 외교·안보, 일자리·성장 등 세 분야로 나눠 공방을 벌였다. 그러나 120분간 진행된 토론에서 후보들의 국정운영 능력과 자질 등을 속속들이 알기엔 부족했다. 1인당 질문·답변 시간은 주제별로 5분, 7분씩으로 나뉘어 총 26분에 불과했다. 번번이 말이 끊기고 시간이 촉박하다보니 정작 국민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전해주는 데 한계가 뚜렷했다. 앞으로 남은 이런 다자토론 세 차례로는 부족하다. 기계적인 균형에서 벗어나 양자 끝장토론 등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유권자들의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풀어줬으면 한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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